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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동아시아&평화

[세상읽기] 안중근은 한국인이 아니다 / 박명림_펌글

Korean Ben 2011. 1. 11. 22:51

한겨레
»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최근 필자의 안중근 관련 칼럼( 안중근, 보편한국, 영웅정신21세기의 첫 10년을 보내며안중근 100주년, 청년들에게 )에 대해 많은 젊은이들이 물어왔다. 안중근 이름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무게와, 서거 100년의 의미 때문일 것이다. 공교롭게도 100주기 날부터 일주일 동안 미국의 필라델피아와 로스앤젤레스에서 발표할 기회가 있어 다녀왔다. 내용은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과 한국의 역할에 관한 것이었다. 이 이중과제를 위한 구상과 제안의 역사적 자원은 안중근의 ‘동양평화 구상’이었다.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 직후 필자는 평화와 통일을 향한 ‘민족적’ 열망이 분출하던 시점에, 한 토론회에서 한국 문제의 국제적·동아시아적 접근을 강조한 ‘21세기 안중근 프로젝트’를 제안한 바 있다. 이후 ‘21세기 안중근 프로젝트’는 한국 문제 해법에 대한 나름의 중심 화두였다. 역사 없는 미래는 없다. 동시에 한반도 평화와 동아시아 평화는 결코 분리할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한국 문제 해결과 동아시아 평화 창조, 한반도 평화와 동아시아 공동체 건설의 ‘공통의’ 설계 자원이 될 것인가? 장구한 독점적 제국 건설 경험 및 한국 지배 역사를 갖고 있는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설계사를 빌려올 수는 없다. 그렇다고 배타적인 한국 민족주의(자)를 전면에 내세울 경우 그것은 중국·일본과의 현실적 힘의 격차로 인해 출발부터 불능상황에 직면한다. 우리는 시작부터 동아시아를, 세계를 품어야 하는 것이다.

창발적인 동양 평화회의, 공동군대, 공동은행, 공동화폐, 3국 주요 지역에의 평화회의와 공동은행 지부 설치, 공동 언어교육 등에서 보듯 안중근은 한국 문제와 동아시아 평화를 ‘함께’ 그리고 ‘상호 불가분의 관계로’ 사유한 선구적인 복합 평화설계사요 중층 사유자였다. 생명·민권·공화·세계에 대한 보편주의에 근거해 ‘독립’과 ‘공존’, ‘자주’와 ‘선린’을 상호 목적적으로 포착할 줄 아는 보기 드문 내면적 긴장도 소유하였다. 안중근 심문·공판기록은 그의 이런 진면목의 결정체이다.

그러나 현금의 요체는 전혀 다른 데에 있다. 즉 안중근을 애국자·민족주의자·항일투사라는 단일기억, 유일 정체성에서 탈출시킬 수 있는 보편적 비전의 문제이다. 그는 한국인을 넘어 동아시아인이요 세계인이었다. 동시에 한국 민족주의자를 넘어 동아시아 평화설계사였다. 우리는 그에 대해 한국인·애국주의·민족주의(자)의 배타적 기억을 넘어 동아시아 평화설계사요 지역주의자·보편주의자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오늘날 누구도 유럽과 세계 영구평화를 위한 보편 명제를 제안한 이마누엘 칸트와, 유럽 합중국과 유럽 단일화폐를 주창한 빅토르 위고를 독일과 프랑스의 민족주의와 국익의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유럽인이고 세계인인 것이다. 그러나 누가 그들을 독일인이 아니고 프랑스인이 아니라고 말하는가?

과장과 신화 역시 극복해야 한다. 그의 평화 구상이 유럽에서조차 유례를 찾기 어렵고 유럽연합보다도 앞섰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이성의 빛을 가리는 왜곡과 신화화는 그를 외려 빛바래게 할 뿐이다. 한국인에서 동아시아인으로, 애국자에서 동아시아 평화주의자로, 민족주의자에서 보편주의자로 나아갔던 ‘안중근의 길’을 떠올리며 오늘의 나와 우리를 상념하자. 우리에게 세계인은 한국인을 내장하지만, 한국인이 곧 세계인은 아니다. 안중근을 기억하는 최고의 방법은 오늘의 한국과 세계(문제)를 함께 품는 것이다. 안중근 심문·공판기록을 읽자. 그리하여 한 인간이 어떻게 평범에서 비범으로 나아갔는지, 어떻게 세계를 품었는지 가슴 밑바닥부터 솟아오르는 그 어떤 뜨거움, 준비성, 논리성, 웅혼성을 배우자.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